내 블로그 글을 써 주는 AI를 운영하기 시작했다.

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이름을 따서 '하루키'라고 부른다(최근 AI에게 화를 많이 내서 '하루키'라고 지은 것이 후회될 때도 있다).

얼마 전 하루키가 쓴 글을 하루에 일곱 번 반려했다. 'AI 글투'가 너무 심각했는데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. 스트레스를 한참 받다가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다음 날로 미뤘다. 아침에 일어나 조건을 일곱 개로 정리해 하루키에게 전달했다.

그러고 나서도 며칠간 계속해서 반려했다.


아침에 전달한 조건은 아래와 같다.

블로그 글쓰기 자동화
■ 하루키에게 새로운 스킬을 전달했으니 테스트 해보자.
■ 요청한 것
- 글쓰기
‣ 두괄식으로 작성할 것
‣ 제목을 내용에 맞출 것
‣ '음슴'+'하다' 체를 사용할 것
‣ 정보/메시지/이야기가 있는 내용
‣ 기승전결, 서론/본론/결론과 같이 구조가 있는 구성
‣ 독자의 눈높이 고려할 것(대학교 2학년 수준)
- 이미지
‣ 분위기를 제안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할 것

조건을 전달한 다음에도 'AI 특유의 글투'는 사라지지 않았다. 반려를 거듭하며 조건은 스무 개 가까이 늘었다. 이 많은 조건을 전부 반영한 글인데도 읽어 보면 이상했다.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다.

로컬 모델을 쓰는 만큼 권한이 적은 편이 덜 들었다.


'이게 무슨 말이야?'


20개 정도 되는 조건에 걸리지 않았지만, 도저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완벽한 '비문'...
이런 저런 궁리 끝에 문서 하나를 만들어 전달했다. 반려한 글과 내가 수정한 글을 꼼꼼하게 비교하며, 무엇이 왜 다른지 설명도 적었다.


두 글을 놓고 비교하니 결과가 좋아졌다


희한하게도 글이 훨씬 좋아졌다. 규칙 열 줄보다 고쳐 쓴 문장 하나를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니...


실험도 해 봤다. 조건을 잔뜩 늘린 지침과 지금의 지침, 두 가지 버전으로 같은 소재의 글을 쓰게 해 비교했다. 역시나 조건을 늘린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었다.


그러고 나서 장치를 하나 더 추가했다. 글쓰기 전에 출처와 근거를 명확히 정리한 것인데, '직접 겪은 일/확인한 사실/찾아본 자료/남에게 들은 말' 등, '글감'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최소한 몇 개는 되어야 글을 시작할 수 있고, 글감이 없거나 모자라면 글을 작성하지 않는다.


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세 번 반려했다. 사실 반려만 세 번이지, 문장과 문구 단위의 수정 요청은 훨씬 더 많다.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글을 볼 때마다 답답한 심정으로, 목적과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게 다시 쓰라고 몇 번이고 돌려보냈다.
이 과정에서 글은 조금씩 나아지더라. 결과적으로 글을 나아지게 한 것은 조건이 아니라, 반려한 글과 내가 고친 글을 비교하며 반복해서 고쳐준 것 — 그리고 '재료 없으면 쓰지 마라'는 원칙 하나.


AI에게 일을 시킬 때 지시문에 '조건과 금지'를 잔뜩 쌓아 올려 전달할 때가 있다. 조건이 많아질수록 조건 외 결함은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다. 조건을 하나 더 적기 전에, 잘된 결과물과 잘못된 결과물을 비교해 보여주는 편이 나은 결과를 만들었다.


그래도 신기하지 않은가...조금씩이라도 수고를 보탠 만큼 나아지니까.